메모
어렸을 때 부터 뭔가에 구속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이 규율이나 규칙, 또는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한 것이던 상관없었다. 하지만 그런 반면에 용기는 항상 부족했기 때문에 막상 그런 구속에서 벗어나려는 노력도 전혀하지 않았다. 그런 부분 때문인지 어렸을 때는 항상 책이나 게임 속으로 도피했던것 같다.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자하는 의지보다는 막연한 상상속에서 만큼은 자유롭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오히려 규칙을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그것을 엄격하게 따르려는 생각만을 가졌다. 스스로 판단하기보다 소속된 집단이나 사회의 일반적인 생각을 규율로 여기고 항상 눈치를 보며 사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힘든 상황이 지속되면서 생각은 더 굳어지고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힘든 시기를 지나오면서 항상 이런 생각을 머리속에서 되뇌였다: 고통은 나의 친구이자 동반자이다. 어디선가 읽은 말일수도 있겠지만 그 말은 나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다. 지금 이 아픔이 나를 적대시하는 거대한 무언가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적어도 이것이 나를 멈추게끔 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하게 해주었다. 괴로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살아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좋은 기회를 통해서 어려움에서 벗어나고 나니 삶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마치 이 순간이 내가 겪은 고통으로 부터의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큰 고민없이 꽤 오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 행복은 사그라들고 매너리즘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매일 매일 즐겁게 보내려고 애를 썼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무의미하게 소비해버린 시간이었다. 단순히 순간의 분위기만을 즐겼을 뿐 거기에서 정말 행복한 감정을 느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희미하게 느껴진다.
이 책을 보면서 가장 심각하게 느꼈던 부분은 나에게 의지가 있었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힘든 시기에는 삶을 이어나가는 것, 그리고 가족을 지키는 것만이 오직 나의 의지였다. 하지만 단순히 살아나가는 것만으로는 더더군다나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사람들의 눈치만 보며 사는 삶이라면 그것을 의지가 있는 삶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멈추면 단순히 꼭두 각시 인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직 나의 의지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딱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동안 구속 속에서 끊임없이 도피하는 삶에서는 벗어나고 싶다는 사실이다. 나를 숨기고 많은 사람들의 무리 속에 보이지 않듯 섞여 들어가려고 스스로를 옥죄는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나를 좀 더 드러내고 표현하는 쪽으로 행동하고 싶다. 그 방법을 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생각할 것이다.
물론 지금 이런 책을 읽었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내 자신이 바뀔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마치 버릇처럼 되돌아오고 다시 되돌아 올 것이 뻔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 의지만 확고하다면 물방울이 바위에 구멍을 뚫듯이 조금이라도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핵심 요점
- 인생은 끊임없는 투쟁이고 그 대상은 다름아닌 나 자신이다.
- 투쟁은 외부의 모든 자극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나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다.
- 나 자신을 잃지 않으려면 사유가 필요하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모든것에 항상 의문을 가지며 타인의 생각은 비판적으로 수용해야한다.
- 스스로를 남들과 다르며 특별하다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개성은 특별함이 아니라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 고통이 없다면 권태가 올 것이며 권태가 없다면 고통 속에 있는 것이다. 권태 속에서 사는 것은 좀비처럼 사는 것에 불과하다.
- 고통은 그 정도는 다르지만 살아있는한 항상 함께하는 것이다. 그것이 평범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되면 더 이상 극심한 괴로움에 시달리지 않게된다.
- 고통과 고난은 그 자체로 징계이므로 구태여 여기에 반성과 자기혐오를 얹을 필요는 없다.
인용
내가 나로서 존재하지 못한다면 불멸을 위해 나는 내가 가진 것 중 단 한 가지도 내놓지 않을 것이다. 나의 개성을 보증해주지 않는다면 그 무엇에도 소속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완전하고 탁월하다. 나보다 더 뛰어난 개성은 없다.
몸과 마음이 불쾌해지지 않는 기준을 정리해 오래도록 지키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게 하면 언젠가는 평범한 생활이 나만의 고유한 재능으로 인정받는 날이 온다.
인내는 무조건 참고 견디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자기 몸이 견딜 수 있는 범위를 깨닫고 그 범위 안에서 유지하는 것이 진정한 인내다.
인내를 그대의 의복으로 삼아라. 의복을 벗고 다니는 것이 부끄러워지리라.
사람이 체면을 중시하는 까닭은, 내세울 인간성이 직분에서 얻은 명예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서다.
타인을 인정한다는 것은 나의 의식 속에 타인의 개별성을 끌어들여 나와 별개의 존재임을 확인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내가 청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뭔가를 얻기보다는 뭔가를 제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라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죽음의 준비는 오직 이것뿐이다. 더 나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