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ju Olle 18-1

추자도는 실제로는 해남과 더 가깝지만 행정 구역상 제주도로 구분되어있다. 그런 이유로 처음에는 왜 굳이 추자도를 제주 올레길에 포함시킨 것인가 의아했지만 18-1 코스를 돌아보니 이해가 되었다. 만일 나에게 지금 제주 올레길 중 가장 제주스러운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이곳을 뽑을 것이기 때문이다.

초기의 올레길은 아마도 제주의 자연과 마을이 가진 독특한 느낌을 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갈수록 관광지로서 개발이 되고 사유지의 변경이 일어나면서 코스는 변화했고 그 특징을 점점 잃어갔다. 내가 걷기 시작한 2010년에만 해도 벌써 많은 코스들이 개발로 인해서 경로 변경이 빈번하게 발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외에도 안전상의 이유로 너무나 가보고 싶었지만 이제는 갈 수 없게된 길 (예: 해병대 길)도 존재한다.

그런면에서 추자도의 올레길은 제주에서 기대되는 트래킹 코스의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18-1 코스는 일종의 종합 선물 세트로 무난한 해안 도로부터 시작해서 아기자기한 마을 골목, 흙 또는 콘크리스 숲길, 오름 같은 나지막한 산, 동물의 등 같은 길쭉한 산, 바다와 산이 조화를 이루는 길, 등대, 다리 모두를 가지고 있다. 이런 것들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서로 조화를 이루거나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다양한 풍경의 변화속에서 걷다보면 마음 속에서 몽글몽글 피어나는 상상과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코스이다.

비슷한 코스를 뽑자면 마찬가지로 다양한 풍경을 가진 19코스(바다, 마을, 돌담 길)를 뽑을 수 있다. 일부 코스는 바다와 숲의 풍경이 조화를 이루는 오솔길 같은 산책로 (큰엉, 토산 산책로)를 가진 4코스랑 비슷하다. 등대를 보면 자연스럽게 1-1 코스 (우도봉)를 떠올리게 된다.

이런 다양한 풍경을 가지고 있는 만큼 코스의 난이도는 매우 어려운 편이다. 코스의 상당 부분이 경사로로 구성되어있으며 일부는 연속된 급경사로 이루어져있다. 18-2 코스와 겹쳐져있는 바람에 자칫 잘못하면 만나는 지점에서 헷갈려서 18-2 코스의 역방향으로 진입할 수 있다. 18-1 코스를 잘 따라가는 것도 쉽지는 않아서 도로 → 흙길과 같은 전환이 일어날 때 입구를 찾기가 쉽지 않은 느낌이다. 돈대산 근처에서 18-1 정방향, 18-2 역방향 진입로가 거의 붙어있고 18-1 정방향 진입로는 눈에 별로 띄는 편이 아니라 옆의 도로로 실수로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 거기다 바다와 산의 풍경이 조합된 산책로는 보기에는 너무 멋진 경치를 지녔지만 걷는 사람 입장에서는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고 낭떠러지가 바로 면해 있어서 굉장히 무섭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런 부분 때문에 11.4 km라는 다소 짧은 거리임에도 4 ~ 5 시간 정도 소요되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올레길 경험이 적은 사람이라면 5 ~ 7 시간도 걸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본다. (예전에는 한개 코스로 이뤄져 있었는데 절대 하루안에 돌 수 없는 최악의 코스였지 않았을까 싶긴 하다.)

시설 면에서는 숙소가 많지 않고 중간에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 없어서 난감한 편이다. 심지어 시, 종점에도 여는 식당이 많지 않아서 아침 또는 저녁을 제공하는 숙소에 묵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나마 상추자도에는 CU 편의점이, 하추자도에는 레몬비(프랜차이즈 아닌듯?) 편의점이 있어서 간단한 요기거리나 물품을 구매할 수 있는 점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어찌되었건 코스 중간에 식사나 물품 구매를 하기 어렵기 때문에 시작점에서 음료수 (2병 이상) 랑 에너지 바 같은 것을 구비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정리하자면 굉장히 고생할 수 있는 코스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래도 제주 올레길 중에서는 가장 화려한 면면을 가졌기 때문에 꼭 경험해 볼 필요가 있는 코스라고 생각한다. 사실 접근성이 나빠서 자주 오긴 어렵겠지만 다시 한번 꼭 와보고 싶은 코스를 알게 된 것 같아서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