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penheimer

영화는 세가지 시점인 오펜하이머의 일대기, 보안 재인가 청문회, 스트로스의 장관직 임명 청문회를 교차해서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다소 복잡해 보일 수 있지만 등장하는 인물들을 세 시점의 장면들로 교차해서 보여줌으로서 인물들이 하는 발언이나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 있도록 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만일 시간 순서대로 장면을 배치했더라면 등장 인물이 많은 영화의 특성상 오히려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눈에 띄는 부분은 스트로스 청문회 장면만 흑백으로 처리한 부분인데 이는 두 청문회의 중심 인물이 동일한 결과에 처하는 상황을 대비적으로 보여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스트로스가 철처하게 주변인일 수 밖에 없는 것을 상징하는 것 처럼 생각된다.

영화 장면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장면은 핵폭탄이 성공적으로 사용된 후의 연설 장면이었다. 관중들의 발을 구르는 소리, 비명 소리에 이어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다가 갑작스러운 불빛과 함께 사람들이 사라지고 타버린 시체 잔해를 밟고 있는 오펜하이머를 묘사하는 장면이다. 인류 역사상 최강의 무기를 개발했다는 폭발적인 성취감에 이어서 그것이 쓰여서 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든 것에 대한 죄책감이 마치 폭발 후의 충격파처럼 뒤늦게 몰려오는 것을 효과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발을 구르는 소리는 해당 장면 앞, 뒤로도 사용되는데 인물이 가지는 중압감을 보여주는 장치로 생각된다. 한편 핵폭발 장면을 재현한 트리니티 실험 부분은 생각보다는 크게 다가오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영화 전반에서 음악이 주는 인상이 매우 강한데 음량도 압도적이지만 보는이로 하여금 감정이 고조되게 만드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마치 아름 다운 예술 작품을 보았을 때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것처럼 일부 장면에서는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지금까지 본 놀란 작품 중에서는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OST가 출시된다면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영화가 보여주려는 오펜하이머는 핵폭탄을 개발한 뛰어난 과학자로서의 모습보다는 그 이면에 있는 불완전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분명 뛰어난 두뇌와 실행력으로 결과적으로 이론을 실제로 만든 사람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현실 감각이 좀 부족한 것 처럼 보이기도 했다. 성공적으로 핵폭탄을 개발해서 사용되는 순간에도 스스로의 성취에 도취해 있었으면서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하는 순간에서야 그것이 초래한 결과를 깨닫는 모습에서, 스스로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차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깔보는 것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친구일 수 있었던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었던 것에서,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일을 했음에도 자신의 뛰어남이나 업적으로 그런 부분을 용서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의 대화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그가 걱정했던 것처럼 지구를 멸망에 이르게하는 연쇄 반응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원자 폭탄에 이어서 더 큰 위력을 지닌 수소 폭탄이 개발되었듯이 이 연구를 과학자들이 이어나가는 한 그리고 국가간의 군비 경쟁이 심화되는 한 인류는 갈수록 더 위력이 강력한 무기를 개발할 것이다. 이러한 연쇄 반응의 끝은 결국 어디인 것일까? 앞서 대기 연소의 가능성에 대해 걱정했던 것처럼 그저 기우이기를 바랄 뿐이다.

p.s.

영화가 지닌 시대적인 배경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이 관람했던지라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기회가 된다면 이런 부분을 좀 더 보고 나서 다시 한 번 관람해보고 싶다.

IMAX관에서 관람했었는데 화면이 큰 것 자체는 엄청나게 장점이었다는 느낌은 없고 (특별하게 화면의 해상도가 더 높아보인다거나 하는 점이 없었다) 사운드는 확실히 만족스러웠었던 것 같다. 가능하다면 돌비 시네마에서 보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IMAX 듄2 예고편이 너무 시선 강탈이었다. 듄2 봐야되나 …